그리움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건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도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처럼 숨었느냐.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봄의 유혹
신석정
파란 하늘에 흰구름 가벼이 떠가고
가뜬한 남풍이 무엇을 찾아내일 듯이
강 너머 푸른 언덕을 더듬어 갑니다
언뜻언뜻 숲새로 먼 못물이 희고
푸른빛 연기처럼 떠도는 저 들에서는
종달새가 오늘도 푸른 하늘의 먼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냇물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아지랑이 영창 건너 먼 산이 고요합니다
오늘은 왜 이 풍경들이 나를 그리워하는 것 같애요
산새는 오늘 어디서 그들의 소박한 궁전을 생각하며
청아한 목소리로 대화를 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산새를 생각하는 '빛나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임이여 무척 명랑한 봄날이외다
이런 날 당신은 따뜻한 햇볕이 되어
저 푸른 하늘에 고요히 잠들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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